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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디퍼의 감상문⑩] 신은 없다 ‘아니 그런 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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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라이트디퍼] 요즘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내용 자체가 자극적이고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무교로서 딱히 종교에 관한 글을 쓸 생각이 없다. 그러나 좀 써보려고 한다. 우연히 대만계 미국인이자 과학소설을 전문적으로 쓰는 테드 창 작가의 <숨>이라는 책을 읽게 됐다. 거기서 8번째 에피소드 '옴팔로스'를 흥미롭게 봤다.

 


옴팔로스는 라틴어로 배꼽, 세계의 중심이라는 뜻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고고학자로 나무의 나이테부터 미라, 협곡에 이르기까지 신이 남겨둔 흔적을 찾아 그 존재를 증명하는 자신의 직업이 가장 가치있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우연히 국가 소유의 유물 중 일부가 무단 반출되어 거래되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해 범인을 찾아간다. 범인은 생각과 달리 어린 소녀였고 범행 의도 역시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소녀는 국립박물관 관장의 딸이었는데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유물을 불법적으로 반출해서 기부했던 것이라고 항변한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에 신의 천지 창조를 부정하는 엄청난 논문이 발표 될 것이라 예언하는데 주인공은 박물관장을 찾아 그녀의 예언이 사실이라는 걸 직감한다. 관장은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논문으로 인해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사실 관장 부부는 과거 어린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아픔이 있었는데 신을 통해 고통을 극복해낸 사연을 갖고 있다. 

 

저는 제가 짐작한 바를 밝혔습니다. 그들이 아들의 죽음을 견딜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그것이 더 큰 계획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신)의 안중에 우리가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런 계획은 존재하지 않으며, 아들의 죽음 역시 무의미하다는 뜻이 됩니다.

 

주인공은 그동안 인간을 창조한 신의 뜻에 따라 행동해왔다고 굳게 믿었다. 신의 가르침대로 살 수 있기 때문에 삶이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결국 인간이란 종의 탄생이 옴팔로스가 아니고 우연이나 부작용으로 일어났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게 된다. 인간이 존재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회의감에 사로잡힌다.

 

이내 주인공은 자신만의 해석을 내린다. 신이 나의 존재에 아무런 의도를 갖고 있는 게 아니라면 그동안 내가 이뤄낸 성취감은 순전히 내부에서 기인한 것이고, 그 사실은 곧 인간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신 중심의 중세적 질서를 깨고 인간이 신으로부터 독립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엄청난 명제를 발견한 것과도 같다.

 

우리 인간은 '왜'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떻게'라는 질문의 해답을 계속 탐구하겠습니다. 이런 탐구야말로 제가 존재하는 목적입니다. 당신이 저를 위해 그것을 선택해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제가 스스로 그것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아멘.

 

옴팔로스는 17세기까지 통용됐던 젊은 지구 창조설(성경을 근거로 지구와 우주가 6일만에 만들어졌고 대략 6000년 정도 되었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는 가정 하에 쓰여졌으나 내용이 전혀 허무맹랑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로 수많은 사이비 종교들은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며 이러한 가설을 끌어다쓰는 걸 자주 목격했던 탓이다.

 

<나는 신이다>를 보며 무엇이 사람들을 그토록 비합리적으로 만들었을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사이비 종교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들은 다들 그랬을 것이다. 왜 그런 잔인한 폭력과 성적 착취의 굴레를 용인했을까. 피해자들마다 무수히 많은 사연과 동기가 있을 것이다. 비종교인도 힘든 일에 직면했을 때 신을 찾아 기도했던 경험이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나약하다. 300만년 전 선사시대부터 시신을 매장하고, 동굴에 벽화를 그리는 등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종교적인 힘으로 극복하려고 했다. 신은 없다. 인간이 만들어낸 신이 있을 뿐이다. 허나 만약 신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 신이 인간으로 세상에 나타나 낙원을 건설한답시고 노동력과 금전을 착취하고 자신의 쾌락을 위해 천국을 팔아먹고 높은 지위를 누리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신은 없다. 아니 그런 신은 없다. 제발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며 성숙해가는 삶의 여정을 상처와 후회로 채우지 않길 바란다. 당신이 사랑하고 그토록 믿고 있는 신의 의지는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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