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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단 한 번의 ‘음주운전’도 절대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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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김태리] 우리 아빠는 상습적으로 음주운전을 했다. 내가 7살 때 첫 자차를 구입한 아빠는, 기억하는 한 언제나 술을 마시고도 거리낌없이 운전대를 잡았다. 그 시대엔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거의 없다시피했다고는 들었다. 퇴근하고 회식 마친 가장들이 벌건 얼굴로 차를 몰고 귀가하는 게 별일도 아니었다고.

 

당시 해외 주재원이었던 아빠를 따라 외국에 살았지만 그 나라도 인식 수준은 비슷했다. 주재원 가족들끼리 교류하는 한인 사회는 작고 친밀했다. 거의 공동 육아를 하다시피 서로의 집에 아이들을 맡기거나 가족 단위로 어울렸다. 아이들도 가라오케 같은 곳에 함께 따라갔고 어른들은 술을 자주, 또 많이 마셨다. 가라오케에서 기분 좋게 취한 아빠들의 쩌렁쩌렁한 노랫소리를 들으며 엄마 무릎을 베고 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빠는 온가족을 태우고도 아무렇지 않게 음주운전을 했다. 문제는 '과도한 자신감'이었다. 만취 상태에서도 입버릇처럼 "야! 늬들 아빠만큼 운전 잘하는 사람이 어딨냐?!"고 고래고래 외치며 차를 몰았으니까. 아빠는 평상시 꽤나 모범 운전자였고 실제로도 운전을 '잘' 했지만, 취했을 때만큼은 평소와는 다르게 운전한다는 것쯤은 어린 나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 아빠는 유독 만취했고 큰 소리로 자신을 과신했다. 그리고 꼭 운전대를 잡고야 말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다른 가족들이 말릴 정도였는데도 완강했다. 나는 3살 터울의 언니와 뒷좌석에 앉아 바들바들 떨었다. 남편의 뜻을 거스를줄 모르는 조선시대 여인 같은 엄마는 아빠를 말리지 못 하고 조수석에 앉아 돌아보며 말했다. "기도해라." 정말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기도하라는 거였다. 아빠가 사고내지 않고 무사히 집까지 갈 수 있게 소리내어 기도하라고. 더 무서웠고, 무력했다. 언니와 나는 손을 맞잡고 중얼중얼 기도했다.

 

예수님, 하느님, 아빠가 아무 차하고도 안 부딪히고, 아무 사람도 안 죽이게 해 주세요. 무사히 집에 갈 수 있게 우리 가족을 지켜 주세요...

 

무사히 주차를 마칠 때까지 기도를 올렸다. 다음날 아빠는 자기가 무슨 행동을 했는지 거의 기억하지 못 했다. 저렇게 살았는데도 전국적으로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기 전에는 나도 고만고만하게 생각했다. 맥주 한 잔 마시고는 운전대 잡을 수도 있고, 집 앞 몇 미터 아주 짧은 거리는 운전할 수도 있고, 한 번 정도는 실수할 수도 있다고. 폭력에 오래 노출된 이들이 강도 낮은 폭행에는 오히려 무딘 것과 비슷했다. 내가 학을 뗀 건 우리 아빠 같은 '상습 음주운전'일 뿐, 저 정도는 일상의 범주라 여겼다.

 

인식 전환의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음주 차량에 부딪쳐 불이 난 차 안에 단 40초간 갇히는 바람에 전신 화상을 입은 재클린 사브리도라는 여성의 사연을 알게 되면서 머릿속이 뒤집히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없어진 얼굴, 불타 몽당해진 손발, 송두리째 뒤바뀐 삶을 전면에 드러내고 음주운전 근절 캠페인에 힘쓰는 그녀를 보면서 감히 무감각할 수는 없었다. 죄책감마저 들었다. '아빠를 말리지 못해서 미안해요'. 해외에서 적은 금액이나마 종종 그녀를 후원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음주운전 가해 차량으로 인해 사고를 만난 우리나라의 이지선씨도 알게 되었다. 상습이고 자시고 단 한 번도 하면 안 되는 짓이구나. 아빠는, 나는, 우리 가족은 그간 정말 말도 못 하게 운이 좋아서 사고를 피해갔던 거였구나. 그때 알았다.

 

그리고 오늘(12월10일)은 지인이 음주운전 뺑소니 차량에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접했다. 피투성이가 되어 병원에 누워 있는 그분의 사진과 고통스러워 하는 사연과는 달리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피해자 A씨'로 간단히 소개된 기사 한 꼭지에 숨이 턱 막혔다. 지인의 쾌유를 빈다.

 

 

내가 아주 오랫동안 좋아한 가수가 음주운전을 했다. 내가 음주운전의 심각성을 잘 모르던 시절에 한 번, 그리고 얼마 전 또 한 번. 몇천 장이나 쌓여 있던 사진폴더를 폭파해 버렸고 한 달간 얼굴도, 목소리도 멀리했다. 솔로 가수라면 진작에 놨을테지만 반평생을 좋아한 팀의 일원이라 내 삶에 여기저기 스며있어 뚝 자르듯 떼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 어떻게든 흐린 눈 뜨고 계속 좋아하고도 싶었지만 점점 맘이 뜨는 게 스스로도 너무 잘 느껴졌다. 주먹 쥔 손에서 모래알 빠져나가듯 아주 서서히 정이 떨어지고 있었는데 이제사 주먹이 반 이상 빈 걸 실감했달까.

 

'결과적으로는 아무 사고 안 냈는데 왜이리 용서를 안 해주냐'는 일부 팬들의 발언을 접할 때마다 점점 마음이 힘들어졌다. 좋아하던 사진을 보아도 그다지 예쁘지 않았고 가슴 설레던 노래나 영상에도 무감각해졌다. 일부러 더 주접을 떨어봐도 마음이 올라오질 않았다. 이 사람에게 우리 아빠나 어제 지인을 다치게 한 가해자를 완전히 투영해서도 안 되겠지만 영향이 없다고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우리 아빠가 평상시에도 개새끼였냐? 아니었거든. 나름 도덕 관념 투철하고, 성실하고, '일반적인' 성인 남성이었거든. 지인의 가해자도 집 앞에서 딱 한 잔 했을 뿐이랬거든. 삶의 큰 부분이 뚝 떨어져나가 없어진 느낌이다. 드디어 인정을 해서 그런가보다.

 

나는 이미 이 사람을 예전만큼 좋아하지 않게 됐다는 것. 다시 어떻게든 정을 주더라도 예전처럼 해맑게 좋아할 수는 없을 거라는 것. 연예인 한 명이 뭐라고 참 공허하다. 미워하고 싶지 않지만 싫어지는 감정이란 참 묘하다. 사실 아직도 양가 감정을 다루기 어렵다. 현생 도피처가 되어주고 위안을 주던 정든 사람이 내가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상습 음주운전'을 했다는 게, 그래서 정을 뗄 수밖에 없다는 게 허탈하다. 그가 앞으로 대중 앞에 서든 초야에 묻히든 상관 안 하고 싶지만 나는 그가 속한 팀의 완전체를 너무 사랑해서 그렇게도 못 한다. 너 없으면 완전체도 못 봐. 근데 널 행복하게 볼 자신도 없어. 넌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음주운전 상습범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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