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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원 정치史②] 고시원 살아본 사람으로서 “다주택자들 정치권에서 퇴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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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사실 모든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비주류로 간주하고 끊임없이 피해자화에 여념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나아갈 정치적 진로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어필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실제 자신이 처한 위치보다 더 과장해서 비장미를 극대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조대원 전 위원장(국민의힘 고양시정 당협위원장)은 과장없이 정치인으로서 너무나 박복한 길을 걸어왔다. 조 전 위원장은 2005년 정치 입문기부터 지금까지 일곱 번이나 공천 과정에서 탈락했다.

 

이렇게 너무 힘들 때마다 내가 이런 호소를 하면 날 지원해주는 사람들이 예수님도 고향에서 인정 못 받았다. 니가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해서 용기를 많이 얻는다.

 

 

지난 8월18일 22시 광주 북구에 위치한 평범한미디어 사무실에서 조 전 위원장과 만나 1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이틀 전(16일) 취재와 상관없이 만나 3차까지 달렸는데 그럼에도 광주까지 온김에 정식 인터뷰를 하지 않고 가는 것은 너무 아쉬웠다.

 

6.1 지방선거에서 또 다시 고배(고양시장 공천 컷오프)를 마신 조 전 위원장은 미국과 유럽 투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조 전 위원장은 또 다시 짐을 싸고 전국을 돌며 마음을 비우고 사람들을 만났다. 광주는 3박4일 일정이었는데 평범한미디어 멤버들과 만나고 싶다고 먼저 연락을 해왔다.

 

조 전 위원장은 그야말로 삼천포의 달인이었다. 토크 주제는 끊임없이 가지치기를 했다. 기사 제목에 대한 내용은 당협위원장 교체에 대한 이야기와 맞물려 자연스럽게 전개된다. 일단 첫 번째 의식의 흐름은 ‘광주’였다.

 

광주 왔으니까 5.18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사실 광주 민주화운동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어났는데 그때 우리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했다. 자기 동생이 공수부대로 광주에 투입됐는데 폭동이 일어나서 죽을지도 모르니 기도를 해달라고 했다. 나도 광주 사람들이 왜 저렇게 들고 일어나서 시끄럽게 하냐고 생각했는데 나는 서른 넘어서 비디오를 보고 진실을 안 것이 아니라 나중에 피해자 가족의 책과 인터뷰를 보고 깨달았다.

 

 

경북 출신 조 전 위원장은 5.18의 진실을 뒤늦게 알게 된 뒤로 “내 친구와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이 날 공격하는 가운데서도 광주의 편에 서고 5.18의 진실에 대해서 얘기하고 지역 감정을 넘어서는 정치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 전 위원장의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1980년 5월 당시) 다른 데는 가만있었는데 광주 시민들만 일어나서 왜 저러냐고 그러신다”면서 “내가 그랬다. 만약에 내가 민주화운동을 하다 총에 맞아서 죽거나 장애인이 되면 어떨 것 같냐고 했다”고 전했다.

 

이날 조 전 위원장은 평범한미디어를 만나기 전 오랜만에 동창생들과 조우했다. 다들 경상도 출신이지만 광주에 정착한 사람들인데 이중 한 여성 친구는 현재 진보당 당원이라고 했다. 조 전 위원장은 그 친구의 사연을 들려줬는데 초등학생일 때 담임 선생님이 “경상도 사람들은 다 나쁘다”는 망언을 듣고 분에 못 이겨 항의해서 끝내 사과까지 받아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자기 소신이 강한 친구였다.

 

그 친구는 조 전 위원장에게 “국민의힘에서 너무 어렵게 버티는 걸 보고 첨에는 쟤가 쇼를 하나 싶었는데 몇 년이 흘러서 짠하고 좀 도와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조 전 위원장은 보수정당 국민의힘에서 17년간 철저히 이방인이었다. 조 전 위원장은 “이 당 국민의힘 내부 비판을 하면서 첩자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는데 한 번도 당을 바꾸지 않았다”고 역설했다.

 

 

실제로 조 전 위원장은 “당신 같은 사람이라면 민주당이나 정의당이 나은데 왜 한나라당 갔냐”라는 식의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 그러나 모든 정치지망생들이 영호남으로 쫙 갈라져 거대 양당 중 한 곳으로 흡수되는 구조적인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조 전 위원장은 지역구도를 깨는 걸 원대한 정치적 목표로 삼고 있다. 누구보다 지역구도의 폐해를 온몸으로 겪어냈기 때문이다.

 

조 전 위원장은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나마 정치의 꿈을 키워왔다. 툭 터져나온 농담과도 같지만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갔지만 대위까지만 하고 옷을 벗고 홀연히 미국 유학(뉴욕대 정치학 석사와 텍사스 A&M 경제학 석사)을 선택했던 것도 그런 배경이 작용했다.

 

육사 출신으로서 나는 분명히 얘기하지만 개인적으로 출세하고 싶어서 단 한 번도 소신을 꺾은 적이 없다. 내 소신이라고 말하지만 국민의 눈높이와 맞지 않으면 아집이다. 극좌든 태극기부대든 다 자기 소신이래. 근데 다 아집이다.

 

조 전 위원장은 고단한 유학 생활 후반기에 접어들었을 즈음 당시 미국인 지도 교수에게 “원래 꿈이 대통령이라서 출마를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때 그 교수는 조 전 위원장에게 “잘 생각했다! 너는 현실 정치가 맞다”고 격려해주면서 추천서까지 써줬다. 그러나 조 전 위원장은 “한국은 아무리 추천서를 잘 받아도 안 된다. 줄을 잘 서야 한다. 그때 박근혜 대표한테 줄 못 서면 안 되는 거였다”고 자조했다.

 

그래서 난 대한민국 국민들이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미국 같으면 하버드 나온 엘리트나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부자들이 대통령 되는데 대한민국은 그런 엘리트들을 별로 안 좋아한다. 국민들은 나와 대화가 되고 내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지를 본다. 다들 돈이 있어야 정치를 한다고 그러던데 사실 미국보다 한국이 더 뛰어난 나라라고 보는 게 미국은 나같이 돈없는 사람들은 정치를 못 한다. 근데 한국은 돈이 없어도 어쨌든 노력하면 버틸 수 있다. 내가 마지노선이다. 나보다 더 없는 사람은 이 바닥에서 버티기 힘들다. 그래도 나같은 경우는 해보겠다고 꿈을 꿔볼 수 있는 게 그래도 대한민국은 금권정치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고 본다. 나는 그리 본다.

 

 

조 전 위원장의 존재감이 부각됐던 시기는 누가 뭐래도 2019년 2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때였다. 조 전 위원장은 당시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해서 면전에서 친박 8적(서청원‧최경환‧홍문종‧윤상현‧이장우‧김진태‧이정현‧조원진)을 거론하며 “그들을 이 나라 정치판에서 영원히 퇴출시키는 것이 국민이 바라는 상식”이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조 전 위원장은 그때가 아닌 2018년 당협위원장으로 선택됐을 때를 본인의 정치 인생 중 가장 빛났던 때였다고 회고했다.

 

(2년간의 당협위원장 생활은) 재밌었다. 9대 1 전국 최고 경쟁률 뚫고 됐는데 난 안 된다고 봤다. 당시 교수들이 공천 심사위원으로 많았고 보통 한 명 정해놓고 나머지는 요식행위로 면접 봤는데 그땐 이상하게도 한 명씩 들어가서 면접 봤다. 거의 뭐 당대표 면접 보듯이 봐가지고 그분들이 도저히 조대원을 떨어트릴 수 없도록 나는 진정성을 갖고 시민운동을 하고 이당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했더니 됐다.

 

다음 공직선거에서 공천권으로 직결되는 당협위원장 자리. 조 전 위원장은 당무감사에서 잘릴 것으로 예상되는 단골 주자였다. 경쟁자들의 음해성 투서도 빗발쳤다. 조 전 위원장은 “잘릴뻔했지만 소신껏 얘기해서 통과됐다”고 말했다.

 

 

물론 결국에는 잘렸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김현아 전 의원이 낙하산을 타고 고양정으로 착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전 의원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에게 밀려 낙선했다. 지금까지 고양정 당협위원장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고 지난 7월 오세훈 서울시장에 의해 SH공사(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으로 내정됐으나 스스로 물러났다. 김 전 의원은 아파트 2채와 오피스텔 1채 및 상가 1곳을 보유한 부동산 기득권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부동산 전문성으로 어필됐던 이미지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민간주도 개발을 옹호하고 공공주택 정책에 대해 “반시장주의”로 맹공했던 이력이 부각됐고, 그런 사람이 SH공사 사장으로서 “행복주택, 청년주택, 장기전세주택 사업을 할 수 있겠느냐”는 비판이 거셌다. 무엇보다 김 전 의원은 건설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서 20년간 재직했던 이력이 있는 만큼 부동산 정책 전문가가 아니라 부동산 투자 전문가였다.

 

김 전 의원은 창릉동(고양 덕양구)이 포함된 3기 신도시 계획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조 전 위원장은 “(김 전 의원이 3기 신도시에 반대한다고 하던데) 나보고는 고양시에 집 있는 사람들이 3기 신도시 반대 집회 한 번도 안 나오고 아마 자기 집 사놔서 여기 안 나온다고 하더라”며 “내 재산은 1억 밖에 안 된다. 청약할 돈이 없다. 처음엔 투자해서 반대하는 사람들 적으로 돌린다고 하더니, 이제는 집이 없어서 집있는 사람들을 다 적으로 돌린다고 하더라”고 토로했다.

 

공공주택 공급을 위한 목적이 있더라도 조 전 위원장은 3기 신도시에 대해 비판적이다. 왜냐면 조 전 위원장은 “정치라는 건 적어도 내가 방송 가서 늘 얘기한 게 민주당이 좋아하는 공론화 과정이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잘못”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 전 위원장이 3기 신도시 찬성론자로 몰렸다. 조 전 위원장은 그런 사람들에 대해 “허위사실유포 혐의로 고소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성토했다.

 

나는 늘 음해당하고 늘 시민과 국민편 서다가 바른길 가다가 음해당하고 공격당하고 있는데 나도 사실 이 당 싫어서 나오고 싶었다. 이 당이 하도 날 미워하니까 나오고 싶었지만 내가 왜 안 나가는줄 아는가. 하도 많은 놈들이 이당 저당 옮기면서 출세하는 걸 보니까 나라도 한 당을 지켜야겠다. 철새는 안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말나온 김에 조 전 위원장은 본인만의 부동산 철학을 설파했다.

 

사실 지금 우리 당협위원장 꽤차고 있는 분들 보면 강남 청남동 나고 자랐고 가족들 강남구에 있고 집 4채 있고 뭐 부산에 자기 남편이 교수하다 보니 작은 오피스텔과 사무실 하나 있다고 다 변명한다. 우리 당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집 많이 가진 게 무슨 잘못이냐고 그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뭐가 잘못이냐고 하는데 난 잘못했다고 본다. 난 다주택자들은 정치권에서 퇴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좀 급진적으로 느껴졌는데 조 전 위원장은 “대한민국 주택보급률이 108%다. 적어도 산술적으로 보면 한 명 앞에 집 한 채씩 다 주어져야 한다. 그러고도 8채가 남아야 한다”면서 “서울은 주택소유율이 50%도 안 된다. 전국은 60%도 안 된다. 그게 뭐냐면 한 명이 여러 채의 집을 갖고 있으면서 일반 집없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가 집이 없어봐서 고시원 생활 해봐서 아는데 한 여름 밤에 해가 늬엿늬엿 지는데 아파트에 불빛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런닝 입고 수박 깨먹으려고 모이는데 그게 집없는 사람들한테 얼마나 서러운지 모른다. 우리 가족도 오순도순 모여서 대화하고 싶은데 난 고시원 생활을 하고 있고 반지하 생활할 때 그 심정을 여러분들이 아느냐. 근데 정치인들이 맨날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약자의 아픈 가슴을 싸메주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입으로 얘기하는 놈들이 집을 3~4채 갖고 집놀이 하는 게 그게 과연 맞냐. 나는 적어도 그런 놈들은 다 정치권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집으로 돈을 벌라는 거다. 정치하지 말고.

 

마지막으로 조 전 위원장은 “제주와 광주를 가보니까 이미 윤석열 대통령 탄핵당했다”고 주장했다. 20%대까지 급락한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최근 30%대로 회복됐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싸늘한 민심이 극에 달했다. 조 전 위원장은 “택시 타거나 식당에 가면 다 입을 닫는다. 저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고 한다”고 전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면 반대로 이재명 대통령 됐으면 대한민국 아주 좋아졌을까? 민주당 빠들은 이재명이었으면 당연히 좋아졌을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물론 요즘 보면 국민의힘 엉망이고 난 윤석열 대통령 처음부터 반대했다. 찾아보면 나온다. 마포포럼 가서 강연할 때 국회의원은 인지도가 중요하지만 대통령은 비호감도가 제일 중요하다. 그런 말을 하면서 나는 김무성 대표를 딱 쳐다봤다. 김무성 대표도 비호감도 관리가 안 돼서 마지막에 (대권 도전에서) 미끄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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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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