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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다이 인생③] 철식씨의 '외로움 해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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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굽힐 줄 모르는 사람
오직 신념만 중시하는 외골수 같은 일부 진보적 사람에게 실망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독고다이 인생 기획 인터뷰 세 번째 주인공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슴 깊이 품고 있는 민철식씨다.

 

지난 2월15일 바람이 거세게 부는 18시 즈음 서울 관악구 신림의 한 카페에서 철식씨를 만났다.철식씨는 은평에서 신림까지 한 걸음에 와주셨다. 철식씨는 정치사회 문제에 정말 관심이 많다.

 

전화로 약속을 잡을 때도 그렇고 오프라인으로 처음 만날 때도 철식씨는 다짜고짜 정치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철식씨는 한 때 진보정당에 몸 담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대한민국 진보정치에 불만이 많다. 실망감이 크다고 했다. 사실 운동권이라는 것이 1990년대까지는 있었지만 민주화가 자리잡은 이후부터는 대학가 등지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 대진연(한국대학생진보연합)만 그나마 명맥을 간신히 잇는 정도다. 철식씨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아무리 빌어먹고 살더라도 운동권을 왜 하는지 의문”이라고 비난했다.

 

 

독고다이 인터뷰는 정치 토크를 하는 자리가 아니지만 개인의 정치 경력을 다룰 수는 있다. 철식씨의 정치 경력에 대해서는 뒷부분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고 먼저 현재 주로 하고 있는 일이 무었인지 물었다.

 

주로 프리터(정규 직업보다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로 살고 있다. 이것 저것 알바로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다. 주로 심부름 대행 일을 하고 있다.

 

철식씨는 심부름 대행 앱 ‘애니맨(anyman)’을 직접 보여줬다. 그 자체로 새로웠다. 심부름업체라고 했을 때 왠지 흥신소가 떠오르기 마련인데 철식씨는 사소한 심부름거리를 대행해주고 돈을 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본지 기자에게도 부업으로 해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권하기도 했다.

 

심부름 대행 일은 배달 대행처럼 기동성을 갖춰야 유리하다. 자차라던가 자기 소유 오토바이가 있으면 좋다. 하다 못 해 자전거라도 있으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주로 도보로 한다. 좀 먼 거리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래서 교통수단이 있는 사람보다 심부름 대행을 하기에는 불리하다. 다른 동네로 넘어가야 할 경우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자가용 보다는 번거롭다. 그리고 가까운 거리여도 언덕이 많을 경우 좀 힘에 부친다. 그리고 건 바이 건으로 하다 보니 수입이 불안정하다. 요즘은 콜이 잘 안잡혀 고민이다. 수수료도 10% 정도 뗀다. 예를 들어 2만원어치 일이면 2000원 정도 뗀다고 보면 된다.

 

 

사실 철식씨는 얼마전까지 ‘장애인 활동지원사’로 일했었다. 말 그대로 장애인들의 활동을 보조해주는 것인데 그들의 이동권 및 노동권을 위해 꼭 필요한 직업이다. 장애인 활동사로서의 고충 같은 것은 없었을까?

 

장애인들을 도와주는 것은 정말 보람차고 좋았다. 그런데 이것도 염연히 복지 분야고 서비스 분야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약간 굽힐줄 알아야 한다. 성격상 누구에게 굽히고 이런 거 잘 못 한다. 자존심을 좀 내려놔야 한다. 하지만 성질 죽이는 것이 힘들다 보니 아예 딱 1년만 보기로 했다. 그래도 퇴직금은 어느 정도 받고 나와 만족한다.

 

이 답변으로 자존심이 강한 철식씨의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활동보조사의 서비스를 받는 해당 장애인의 입장도 있겠지만 과도한 요구사항에 자존심 상해가며 근무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 자존심이 강한 철식씨에게도 건강 문제는 괴롭기만 하다. 건강 앞에 장사 없다.

 

심부름 대행 일을 하며 산지가 거의 반년이 다 되어 간다. 사실 수입은 활동지원사를 할 때가 더 괜찮았다. 돈 1백만원이라도 안정적으로 수입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담배는 원래 피지 않았지만 술은 좋아해서 그동안 많이 즐겼다. 그러나 요즘 몸이 안 좋아 술도 못 마시고 있다. 근육 이완제 등을 먹고 있다. 그러니 술을 자연스럽게 끊을 수 밖에 없었다.

 

 

구체적으로 어디가 아픈지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허리가 많이 아프다고 했다. 허리 디스크는 아니고 그냥 근육이 눌려서 통증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통풍도 있다고 했다. 건 바이 건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데 몸이 아픈 까닭에 경제적으로 타격이 크다.

 

현재도 그렇지만 철식씨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힘든 적이 많았다. 나름대로 고통을 극복해내는 원동력이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너무 힘들어 죽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생존 본능이 있는 동물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즐길거리가 많은 데 왜 죽어야 하나? 넷플릭스가 잘 되어 있어 그것을 주로 즐긴다.

 

맞는 말이다. 재밌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넷플릭스에 있는 고품질 컨텐츠 몇 개만 정주행 해봐도 삶의 교훈을 깨달을 수 있다. 세상 재밌는 것들은 다 봐야지! 그런 생각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해소될 수 있다. 이외에도 철식씨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 그 자체가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누구에게 어쩔 수 없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일부러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 그 선에서 자신의 취미나 놀이, 즐길거리를 찾으면 된다. 이 마음을 가지고 힘들어도 열심히 살려고 한다.

 

 

철식씨의 페이스북에 들어가보면 정치 게시물이 가득하다. 철식씨는 진보 성향이다. 진보적 사회 운동도 활발히 했다. 하지만 요즘 진보진영에 매우 부정적인 마음이 든다.

 

나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를 매우 비판한다. 페미니즘 이런 것을 떠나서 내가 보기에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것 같다. 30대 중반에는 자기 생각이 있는 게 정상이다. 그래서 내 생각을 가감없이 이야기하고 싶다. 심 후보가 예전보다 감이 떨어진 것 같다. 본인 색깔은 확고하지만 대중들의 생각을 잘 읽지 못 하는 것 같다. 자기들끼리 갇혀 있는 느낌이 든다. 요즘은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다. 아니 지지한다기 보다 뭔가 혜택을 많이 받아왔기 때문에 기브 앤 테이크를 해야 할 거 같다. 이 후보가 추진했던 주거급여의 혜택을 받았다.

 

사실 철식씨는 지금 대선에서 누굴 찍을지 깊게 고심하고 있다. 이 후보로 기울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도 사색 중이다. 그런데 철식씨는 2020년 총선 전까지만 해도 위성정당 문제 등 민주당에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이 대목은 뒤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철식씨는 과거 공공근로를 한 적이 있다. 공공근로의 장점이 있는데 여러 생활복지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공공근로가 정말 재미있었다. 공공근로를 하면서 복지 정보를 습득하는 재미가 있다. 내가 왜 이 말을 하냐면 청년들 중에 지원받는 것을 부끄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힘들면 도움을 청하고 지원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복지 정보를 일일이 알기가 어려워 못 받는 경우가 많아 개선이 필요한 것 같다.

 

과거 허지웅 작가는 자립심이 너무 강해 도움 받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고 실토한 바 있다. 그러나 한 번 암에 걸려 크게 아프고 나니 국가든 주변 사람이든 반드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철식씨도 그 점을 알고 있다. 도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독고다이 인터뷰의 단골 질문들 중 하나다. 철식씨의 인생에서 전성기는 언제였을까?

 

20대 때 잠깐 반년 정도 회사 생활을 했었다. 그것이 나름 전성기라고 생각한다. 아리랑TV 시설관리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월급이 꽤 괜찮게 나왔다. 그때 강남에서 잠깐 살았었는데 월세가 40만원이 나갔다. 강남치고는 나름 싼 거다. 그래도 월급이 안정적으로 들어오니 그 월세도 감당 가능했고 무엇보다 지인들에게 술을 살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 물론 장애인 활동지원사 일을 할 때도 좋았다. 그때도 시설관리 일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돈이 주는 묘한 안정감이 행복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고독감을 느낄 때가 많다. 외롭고 쓸쓸하다. 철식씨는 언제 외로움을 가장 많이 느낄까? 

 

크리스마스 이런 거 정말 짜증난다. 명절도 나는 별로다. 예전에는 부모님에게 용돈도 드렸으나 요즘은 좀 힘들어 용돈을 드리지 못 해 죄송할 따름이다. 명절에 잘 내려가지도 않고 거의 부모님에게 생존 신고만 하는 수준으로 연락한다. 그래서 명절이나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날에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특별한 날에 나만 혼자 있으면 외로움이 배가 된다. 명절이든 크리스마스든 철식씨가 외롭지 않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일단 철식씨는 그럴 때마다 앞에 서술했듯이 OTT를 친구삼아 고독함을 달랜다. 예능 보단 서사가 있는 드라마와 영화가 제격이다. 요즘에는 애니메이션이 많이 끌린다고 한다. 그리고 마실 수 없는 술 대신 커피를 즐기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이제는 궁극적인 목표나 꿈을 물어볼 차례다. 살짝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분석하는 일을 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은 좀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시민사회 운동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여력이 있다면 농사를 짓고 싶다.

 

시민사회 활동과 농사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농촌 운동일까?

 

농촌 운동도 시민사회 운동 범주들 중 하나다. 그런데 농촌 운동하는 사람들은 정말 정의로웠다. 그 점은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저렇게 해서 뭐 먹고 사나? 이런 의문도 들었다. 내가 경제적 어려움이 있을 때 그분들이 많이 도와주었다. 그래서 어쩌면 농사를 해보고 싶은지 모르겠다. 그리고 막연하게나마 농사를 하면 밥을 굶고 살진 않을 것 같다.

 

앗차! 분석하는 일이 뭔지 구체적으로 못 물어봤다. 이밖에도 철식씨는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더 들어보자.

 

돈이 있다면 카페나 토즈(공간대여업체) 같은 것을 운영해보고 싶다. 그런 곳에서 열심히 공부하거나 토론, 회의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긍정적인 기운을 받고 싶다. 그리고 체력과 건강을 회복한다면 활동지원사 일도 다시 해보고 싶다.

 

 

철식씨는 과거 '미래당'에서 정당 활동을 했었다. 아주 활발했다. 그러나 탈당했다.

 

솔직하게 반반이다. 많이 배운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만 중요하지 다른 사람들의 내면을 잘 보지 못 한다. 자기만 옳다고 생각한다. 왜 저 사람이 자신의 생각과 다른지 그 원인과 생각을 분석해보지 않는다.

 

철식씨는 2020년 총선 직전 미래당 내부에서 위성정당 문제에 완고했다. 미래당은 민주당발 위성정당론과는 다른 연합정당론을 내세웠는데 철식씨에게는 그것조차 못마땅했다. 그 당시 철식씨의 강경한 언행이 문제가 되어 당 중앙위까지 징계 안건이 올라갔을 정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철식씨는 민주당과 이 후보에게 힘을 밀어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 위성정당 참여에 그토록 반대했던 철식씨가 왜?

 

힘들게 살고 있다 보니까 현실을 깨달았다. 솔직하게 말하겠다. 내가 힘들다 보니 아예 갈아엎는 것보다는 기존 제도를 리모델링 하는게 낫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사회 신념이라는 것은 항상 변할 수 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나에게 빵 하나 더 줄 수 있는 사람이나 정치인을 찾는 그런 활동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있던 미래당에서는 터놓고 이런 것을 이야기할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아까 말했다시피 왼쪽 사람들은 신념만 보지 그 사람의 내면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좌파는 그런 면에서 정말 냉정한 거 같다.

 

 

결국 철식씨가 하고 싶은 말은 진보진영의 일부 사람들이나 단체가 신념에만 너무 매몰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거다.

 

사실 철식씨가 자신을 받아주고 알아주는 집단의 정치 성향을 따라가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미래당 내에서 완고한 원칙주의자였던 철식씨가 당내에서 인정받지 못 하고 배척을 당하자 새로운 곳을 찾아나섰고 마침 알게 된 정치 그룹에 녹아들기 위해 그에 맞는 성향을 탑재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절대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재명 후보를 찍을지 고민하고 있다. 이재명 지지는 반반이다. 많이 고민하고 있다. 그동안의 선거에서 나는 진보진영 후보에만 표를 주었다. 그런데 진보진영에 실망하여 고민이 많이 된다. 이 후보에게 표를 주더라도 민주당이 좋다기 보다 진보진영에 실망한 것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래도 이 후보는 그나마 말이 통할 것 같다. 솔직히 윤석열 후보 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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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

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겠습니다. 더불어 일상 속 불편함을 탐구하는 자세도 놓지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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