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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뺑소니범 ‘11년 선고’에 딸 잃은 어머니 “똑같이 죽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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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지난 10월7일 새벽 대전 서구 둔산동 문정네거리에서 초록불 신호등에 맞춰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던 보행자 2명을 들이받고 도망간 음주 뺑소니범 39세 택시기사 남성 A씨가 1심 결과 징역 11년을 선고받았다. 법조계에서는 음주 뺑소니범에 내려진 가장 무거운 형량이라는 반응이지만 24세 딸 김경은씨를 가슴에 묻은 모친 B씨는 “이런 형량이라면 나도 음주하고 (A씨를) 똑같이 죽이고 싶은 마음밖에 안 든다”며 재판부를 강하게 질타했다.

 

 

대전지방법원 김지영 판사(형사7단독)는 16일 윤창호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험운전치사) 및 특가법상 도주치사 등으로 구속기소된 A씨에 대해 징역 11년을 선고했다. 앞서 대전지검 공소 담당 검사는 A씨에 대해 윤창호법상 최고 양형 기준인 무기징역을 구형한 바 있다.

 

김 판사도 A씨의 만행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무거운 처벌이 불가피함을 피력하긴 했다.

 

만취 상태에서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시속 75㎞의 과속으로 운행하여 사고를 내고 그대로 달아났다. 피해자 보호조치를 하지 않아 사회적 비난가능성이 매우 크고 엄중한 처벌을 받을 필요가 있다. 검거 당시 횡설수설하고 제대로 보행하지 못 할 정도였고 수사기관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사고 직후 블랙박스 장치를 제거하는 등 규범과 윤리적인 측면에서도 용납할 수 없다. 판결문에 어떤 표현으로도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유족이 큰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A씨가 유족으로부터 용서받지 못 하고 합의에 이르지 못한 점 등을 고려했다.

 

B씨는 판결문 낭독을 직접 듣고 한참 동안 법정에서 일어나지 못 했다. B씨는 기자들 앞에 서서 억울한 심정을 쏟아냈다.

 

사실 무기징역이든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간에 아이가 돌아올 수 없기에 중요하지 않다. 이런 형량이라면 나도 음주하고 (A씨를) 똑같이 죽이고 싶은 마음밖에 없다. 11년 나왔는데 나도 음주운전으로 해가지고 11년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재판부가 유족과 가족의 고통을 다 판결문에 담지 못 할 정도라고 했지만 당해보지 않고선 절대 이해하지 못 할 것이다. 아이에게 가서 어떤 말을 어떻게 해줘야할지 모르겠다.

 

 

이날 선고 공판에서는 대전 사건이 보도된 뒤에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 드러났다.

 

A씨는 무려 혈중알콜농도 0.203%로 본인의 카니발 승합차를 몰다 김씨와, 또 다른 30대 남성 피해자 C씨를 들이받고 약 3km 이상 도주극을 벌였다. 그러다 유성구 구암동 카이스트교의 화단을 2차 충돌한 뒤에야 경찰에 붙잡혔다. 이 과정에서 A씨가 범행 은폐를 위해 블랙박스를 제거하고 황급히 빠져나오려고 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완전히 만취한 A씨는 명백한 고의를 갖고 도주치사를 범했고 재차 은폐 시도를 한 것이다. 더구나 사고 지점은 스쿨존이었다.

 

A씨는 2차 사고에 대한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대전유성경찰서 도룡지구대 1팀 소속 정화준 경위와 임종원 경장에 의해 검거됐다. 두 경찰은 구 모델 카니발 차량을 살펴본 결과 2차 사고로는 생길 수 없는 조수석 유리창 깨짐 흔적과 함께 머리카락들이 끼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A씨를 추궁했다고 한다. 결국 A씨는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례적으로 무기징역을 구형했던 만큼 검찰은 유족들의 입장을 고려하고, 판결문 내용을 좀 더 검토해본 뒤 조만간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당시 김씨는 40미터 가까이 붕떠서 2.5바퀴를 돌며 날라갈 정도로 크게 다쳤고 이내 목숨을 잃었다. 김씨는 경남 김해 본가에 거주하는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대전에서 대학을 다니며 지내고 있었고 사건 당일 치킨집 알바를 마치고 귀가 중이었다.

 

김 판사는 A씨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유족 및 일반 국민들의 탄원서도 받았지만 A씨 본인으로부터도 30여개의 반성문을 제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판결문 속 여러 문구만 봤을 때는 전자의 탄원을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되나, 검찰의 구형량에는 한참 미치지 못 한 선고를 했기 때문에 사실상 후자의 탄원에 더 많이 감화된 것이라는 의심이 든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위원은 TJB와의 인터뷰를 통해 “음주운전으로 인해서 할 수 있는 최악의 범죄 상황을 지금 피고인이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징역 11년은 굉장히 낮은 형량”이라면서 “(오히려) 검찰의 구형량이 합당한 형량이 아닌가”라고 밝혔다.

 

교통사고 전문 정경일 변호사(법무법인 엘엔엘)는 평범한미디어에 “(과거 판례들을 종합해보면) 이례적인 검사 구형에 그래도 낮지 않은 선고형이라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이라면서도 “국민 눈높이에서 판단해본다면 많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고 코멘트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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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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