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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피해자들의 연대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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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다들 “갈 길이 멀다”고 했다. 3년 전 윤창호법이 제정됐고 이제는 이를 보완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음주운전 피해자들이 최초로 모였다. 윤창호법을 제정한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소위 ‘술고래 솜방망이 처벌 방지법’으로 네이밍을 했다. 그렇게 윤창호법 보완 개정안을 냈다.

 

평범한미디어는 윤창호법 보완 입법 기자회견을 진행했던 지난 15일 음주운전 피해자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모여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들은 이날 14시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했고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의 면담 일정을 소화했다.

 

일정을 모두 마치고 15시반 즈음 국회 인근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참석자는 △故 윤창호씨의 친구 이영광씨 △대만 유학생 故 쩡이린씨의 친구 박선규씨와 최진씨 △휠체어와 간병인에 의지하지 않으면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은 오토바이 음주운전 피해자 안선희씨의 여동생 안승희씨 △교통사고 전문 정경일 변호사(법무법인 엘엔엘) 등 5명이었다.

 

일단 소감부터 물었다.

 

선규씨는 “(오늘 일정을 마치고 보니) 법안이 통과된 것은 아니고 시작 단계라는 점을 느꼈다”고 말했고 최진씨는 “(법안 통과 과정이) 쉽지 않고 저희는 이렇게 피해자 유족 친구로서는 넘어야 할 단계가 정말 많구나라는 걸 알게 됐다”며 “국회나 법에 익숙치 않은 상태인데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고 운을 뗐다.

 

이어 “지난 1년간 되돌아보면 1년 전이었으면 쩡이린과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었을텐데”라며 “여태까지 노력했고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는 걸 보니 참 아직 갈 길도 멀었고 굉장히 쉽지 않을 것 같지만 이렇게라도 시작할 수 있어서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털어놨다.

 

음주운전 관련 법 제도 개선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많고 갈 길이 멀었지만 그동안 개별적으로 음주운전 비극을 지켜봤던 사람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이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영광씨는 “오늘 이렇게 국회에 오니까 예전에 저희가 윤창호법 제정 당시에 했던 것들이 떠오르면서 창호 생각이 많이 났다”며 “비슷하게 아픔을 겪고 있는 분들과 함께 해서 그래도 나는 뭔가 힘이 나더라. 다 같은 상황이라서 그런지 힘이 났다”고 말했다.

 

이어 “근데 진짜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에 이게 시작이다. 앞으로 갈 걸음들이 너무 많은데 결국에는 이제 언론 대응 밖에 없다”며 “언론에 알리고 법사위(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의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이런 것 밖에 없고 앞으로 갈 길이 많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고 호응했다.

 

 

윤창호법 보완의 계기가 됐던 사건은 선희씨가 당한 오토바이 음주운전이었다. 선희씨의 삶을 송두리째 짓밟은 가해자 20대 남성 헬스트레이너 손모씨는 진술서를 작성할 수 있었을 정도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정을 받아 윤창호법을 피해갔다. 윤창호법 미적용 피해 사례는 또 있다. 2020년 9월8일 자정을 넘긴 시각 대전 동구에서 술에 취한 채로 승합차를 몰다가 오토바이 운전자 20대 남성 A씨의 목숨을 앗아간 50대 남성 B씨다. B씨는 과거 두 차례의 음주운전 전과가 있었고 혈중알콜농도 역시 0.120%로 만취 상태였지만 1심에서 윤창호법으로 처벌되지 않았다. 그 대신 교특법상(교통사고처리특례법) 치사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B씨에 대해 “음주측정 당시 사진을 보면 피고인의 눈빛이 비교적 선명하다”면서 “다음날 이뤄진 조사에서도 사고 경위를 비교적 상세히 기억했다. 수사 보고에 운전자 혈색 붉음, 보행 상태 비틀거림, 언행상태 부정확 등으로 기록돼 있지만 이것만으로 B씨가 술에 취해 주의력·반응속도·운동능력이 상당히 저하된 상태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2심에서 B씨는 윤창호법을 적용받았지만 고작 1년 상향된 징역 4년으로 다스려졌다. 최근 음주운전 치사 사건에 대한 평균 형량이 6년 이상에서 8년까지 나오고 있는 점에 비춰볼 때 명백히 후퇴한 판결이다.

 

승희씨는 “솔직히 나는 지방(전남)에 있어서 좀 주변 분들이 그런 음주운전에 대해 좀 무디다. 저희 가족이 처해 있는 이런 사건들에 대해 개인의 가족사로만 보고 있다. 그래서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 개선이 먼저 돼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며 “좀 고통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평범한미디어에) 카톡방 같은 소통창을 요청드렸다. 일단 나는 피켓 시위를 하면서 사회적 책임감이랄까. 전에는 나도 피해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제3자의 입장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이제는 그분들의 고통도 어느정도 헤아리게 됐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던 정 변호사는 “이렇게 사연있는 분들이 나와서 도와주시고 이해관계가 끝난 분들인데도 이 자리에 함께 해주셔서 다들 대단하고 고맙단 생각이 든다”며 “사실 이렇게 오는 것도 누가 지원을 해주는 게 아니라 다 자기 사비를 내서 자기 시간 쪼개서 부산에서도 오고 전남에서도 오고 (승희씨도) 이제 도움 받으셨으니까 내년에도 (다른 음주운전 법 제도 개선이 필요할 때) 도와주셔야 한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윤창호법 제정 당시보다 이번 법안 보완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왜냐면 “법조계에서는 윤창호법 제정은 그냥 형량을 높인 것이지만 이번 개정안은 아예 그 법의 유무죄 어떻게 보면 윤창호법이 적용 안 되던 것까지 적용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파급력이 더 크고 지금 정치 돌아가는 걸 봤을 때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 변호사는 “평범한미디어에서 잘 끌어주셨는데 길게 보셔야 한다. 길게 보셔가지고 적어도 내년에도 하고 내후년에도 하고 그때까지 많이 도와주시고 사정이 있어서 못 도와줄 수도 있지만 그때 되면 새로운 분이 또 오고 이제 계속 평범한미디어에서 잘 이끌어주시지 않을까 생각은 들고 그 자리에 나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 않아 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

 

일단 윤창호법 보완 법안부터 통과되는 것이 중요하다.

 

정 변호사는 “(음주운전 관련 법 제도 정비 또는 정책 개선을 위해) 할 게 너무 많은데 일단 이것부터 하고 그 다음에 측정 불응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그 문구도 넣고 그래야 한다”고 피력했다.

 

음주운전으로 나의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 그날. 그날 이전과 이후의 삶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영광씨는 기독교 집안이었는데 신을 원망하게 됐다고 한다.

 

영광씨는 “(창호는 정말 모범적인 친구였는데) 그런 사고를 당하는 걸 보고 환상이 깨졌고 종교에 대한 믿음이 사그라들었다. 신앙심을 좀 많이 져버리게 됐고 너무 많이 속상했다. 신을 많이 원망했다”며 “약간 젊음의 환상 이런 게 있었던 것 같다. 어리니까 뭐든지 할 수 있다. 창호 같은 경우에는 꿈이 대통령이었다. 진짜 할 수 있을줄 알았다. 못 해도 국회의원쯤은 하겠다. 근데 그 꿈이 순식간에 이렇게 사라질 수 있구나. 그런 걸 느꼈고 무엇보다 처음 1~2년간에는 상실감 이런 게 너무 컸다”고 고백했다.

 

그 이후에는 “정신과 치료도 받고 상담도 다니고 이렇게 발버둥치면서 극복을 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까 여전히 엄청 큰 흉터이지만 순간을 좀 더 소중하게 대하게 되는 그런 버릇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가장 친한 친구와의 갑작스런 이별. 이제 영광씨는 예전과는 달리 “어머니와 아버지한테도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했다. 왜?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많이 사랑하고 많이 나누고 많이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선규씨는 인도 위나 초록불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널 때조차도 “불안해졌다”고 했다. 한밤 주이 아닌 대낮에도 음주운전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뉴스를 접한 뒤로는 더 불안해졌다.

 

무엇보다 선규씨는 “무조건 언론플레이를 해야만 범죄자가 형을 높게 받고 그런다는 걸 보면서 왜 개인이, 자동차가 없는 약자가 두려워하면서 살아야 하는 건지 이게 맞는 사회인 건지 조금 원망스러웠다”고 밝혔다.

 

창호씨처럼 쩡이린씨도 참 좋은 사람이었다.

 

선규씨는 “최근에 11월6일 쩡이린 1주기를 기리면서 서울숲 벤치를 입양했다. 이린이를 기억하기 위해서 기자회견 때도 참석하고 보도자료도 같이 준비하고 그랬던 친구들과 다시 만났는데 아직도 와닿지 않는 것 같고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며 “오늘도 기자회견에 참석하게 된 것은 우리가 뭘 한다고 하더라도 이린이는 돌아오지 않겠지만 이린이가 남을 도와줬던 것처럼 우리도 최선을 다해서 법이 바뀌고 사회가 바뀌도록 기여해서 그렇게 이린이를 기억하고 싶다”고 풀어냈다.

 

최진씨는 근래 들어 대전 음주뺑소니 사망 사건서울 금천구 음주운전 사망 사건 등을 접하면서 “정말 보기 너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말을 이어가면서도 감정이 복받쳐 올랐는지 최진씨는 힘들어했다.

 

“잘 되는 재판들이나 케이스들은 자기 친구들이 시간과 여유가 있어서 나서줬다. 그것도 너무 안타깝다. 만약 저희가 이렇게까지 활동을 할 수 없었으면 이린이 사건이 어떻게 됐었을까. (울컥하며) 이린이 부모님은 어떻게 됐을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승희씨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이 소중해졌다”고 했다.

 

승희씨는 “(눈물 지으며) 저 사람 참 열심히 살았는데..... 꿈도 있었고 (지금은) 기약이 없다. 집에다 짐을 다 갖다놨는데 정말 책이 많더라. 저 사람이 어느정도 회복이 될 수 있을까 싶어서 좋은생각 책을 큰글씨로 나온 걸 그 책을 넣어줘 봤었는데 기약이 없다”며 “일단 언니가 열심히 살아왔던 삶 만큼 나도 그만큼은 그 이상은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승희씨는 “가해자쪽과의 합의로 진행을 내 임의대로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며 “(인지 능력이 저하된 언니 대신 우리는) 합의를 해주지 않았다. 저희 언니 회복이 먼저”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밖에도 승희씨는 경찰이 검찰로 사건을 송치했을 때 “도주 우려가 있었다”는 점이 문서에 적혀 있었음에도 바로 구속되지 않았던 점, 가해자측이 치매 부모를 모셔야 하는데 자기 아들까지 그렇게 되어 곤란하다면서 선처를 호소하고 있는 뻔뻔한 태도 등에 대해 지탄했다.

 

“저희 집이 완전히 다 무너져버렸다. 하.... 근데 그게 반성문 제출하는 것이 정말 반성을 하고 있는 것인지? (가해자의 조부모가) 치매라고 하고 막 그러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정말 속이 막 뒤집힌다. 피해자들의 삶이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관심이나 있는 건지? (가해자 부친이) 무슨 치매 부모님을 잘 모셔야 된다는 그런 말이 왜 법정에서 통하는 건지?”

 

 

피해자들은 대전 음주뺑소니 사건과 관련 검사가 가해자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는 점에 대해 놀라워 하면서도 실제 어떻게 선고될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고 입을 모았다.

 

정 변호사는 “지금 합의가 안 돼서 무기징역 구형했는데 (현실적으로) 12년형 정도로 나올 것 같다”며 “무기징역을 구형했다는 점에서 검찰은 윤창호법의 취지를 제대로 아는 것 같다. 그 취지를 알아서 구형에 반영하고 있는데 아직 법원에서는... 좀 반영되는 것도 있긴 있다. (윤창호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비해서는 높아지곤 있는데 그래도 부족하다. 지금 8년을 넘어 10년형 12년형 그렇게 한 번 선고된다면 그게 음주운전 근절하는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판결문 데이터 분석을 통해서 봤을 때 그동안 음주 도주치사로 10년 이상 선고된 사례가 전무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우리 사법부는 음주운전 살인에 대해 과실로만 취급하는 관성이 너무 크다.

 

영광씨는 “(2018년에) 윤창호법 논의할 때도 그랬지만 법사위에서 이건 실수이기 때문에 저희가 무기징역까지가 아니라 (하한형 징역 5년에서) 사형까지 이렇게 주장했던 것이 윤창호법의 원안이었는데 법사위원들은 이건 살인일 수가 없고 실수다. 이렇게 못박아버렸다”며 “미필적 고의 가능성 이런 것도 얘기를 안 하고 나중에 다른 의원 1명(채이배 전 의원)이 (하한형을 징역 3년에서 살인죄에 준하도록 재고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다들 실수라고 보는 인식에 아예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니까 상해치사는 살인에 대한 고의는 없지만 상해를 입힐 때 고의는 인정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똑같이 하한선이 3년이어도 집행 유예가 아니라 실형을 받을 가능성이 훨씬 높은 거죠. 그런데 이렇게 같이 하한선을 했을 경우에 음주운전 치사 사고 같은 경우에는 그 고의성을 입증하기가 매우 어려워요. 과실범으로 분류가 되는 거기 때문에. 그래서 저희가 어쩌면 상해치사 보다 법조문상에서 하한선은 높겠지만 실제 양형에 들어갔을 때 집행유예가 선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처음부터 5년을 주장을 했던 거예요.” [창호씨 친구 김민진씨 / 2018년 11월29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그러나 미국 등 꽤 많은 선진국들은 음주운전에 대해 매우 엄격하게 처벌한다.

 

정 변호사는 “미국 같은 경우 1급 살인과 2급 살인을 나누는데 그래서 우리니라의 과실 범죄나 음주운전 같은 경우에도 살인에 준하게 취급한다. 개념이 다르긴 다르지만 음주운전에 대해 살인으로 보고 있다”며 “(한국 사법부도) 법대로 그대로만 선고하면 좋은데 그대로 안 한다. 미니멈이 3년인데 너무 가볍게 선고한다”고 비판했다.

 

이번 기자회견 일정에 참석하기로 했다가 사정이 생겨 불참하게 된 '햄버거집 낮술 사건'의 피해 아동 부친 김주영씨(가명)는 조금 늦게 도착했다. 주영씨의 이야기를 소개한 기사는 다음편에 담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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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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