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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안심 귀가’를 위하여 ·· ‘강간 목적 주거침입죄’ 입법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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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지난 5월말 발생한 ‘신림동 사건’ 이후 5개월이 지났지만 여성들의 귀갓길은 여전히 공포스럽다. 모르는 남성이 귀가하는 여성의 뒤를 밟아 주거 공간에 침입하거나, 몰래 훔쳐보거나, 음란행위를 하는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일 저녁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도 혼자 살아본 적이 있지만 집에 남자 신발 놔뒀었고, 빨래 널 때 일부러 남성 팬티를 섞어서 놓고, 내가 핑크색 커튼을 좋아하는데 핑크 커튼을 달지도 못 한다. 여자라고 다 광고하게 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여성들은 불안하다. 그러나 법과 제도는 미비하고 부족하다. 3가지 사례가 있다.

①쫓아가서 주거침입을 했다가 남자친구로 인해 도망(9월12일)

C씨는 9월12일 새벽 5시 서울 신림동의 한 주택가에서 귀가하는 여성의 뒤를 쫓아 건물 현관까지 따라 들어갔다가 여성의 남자친구를 마주하고 도망쳤다. 관악경찰서는 10월11일 C씨를 검거했고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했다.

 

 

②현직 경찰이 주거침입 후 여성을 완력으로 제압(9월11일)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단 소속 경사 B씨는 9월11일 자정 즈음 서울 광진구의 한 공동주택 현관 안으로 침입해 여성을 물리적으로 제압하고 성폭행을 범하려는 직전 여성의 비명을 듣고 도주했다. B씨는 여성이 현관 입구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이 열리자마자 두 손으로 여성의 목과 입을 각각 잡아챘다. 여성은 넘어졌고 가까스로 B씨를 밀어낸 뒤 “엄마”라고 소리쳤다. B씨는 황급히 도망갔다. B씨는 10월3일 긴급 체포돼 구속됐고 2주 뒤인 17일 주거침입 강제추행(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 관한 특례법)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③알몸으로 여성의 집 화장실로 침입(8월19일)

A씨는 8월19일 23시가 넘는 시각 옷을 다 벗은 몸으로 부산 사하구의 같은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고 있는 여성의 집에 침입했다. A씨는 화장실 방충망을 뚫고 들어갔으나 인기척을 듣고 바로 경찰에 신고한 피해 여성의 기지로 인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여성은 화장실 문이 열리지 않게 밖에서 붙잡은 상태로 경찰에 신고했다. 정성종 판사(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 형사4단독)는 11월1일 A씨에 대해 집행유예(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를 선고했다.

우선 가장 중요한 ③ 사건을 살펴봐야 한다.

A씨는 술에 취해 기억이 없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수사 당국은 A씨가 알몸 상태였던 점, 여성 혼자 사는 집 화장실로 침투한 점 등을 고려해 강간미수 혐의를 적용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주거침입만 적용해서 검찰로 송치했다.

이유는 뭘까. 인기척을 느낀 피해 여성이 화장실 문을 열려고 했으나 겁을 먹은 A씨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검찰도 주거침입 혐의로만 기소했고 징역 6개월을 구형했다. 신림동 사건의 가해자 조씨는 A씨처럼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 했는데 구속영장실질심사(신종열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 당시 주거침입 강간미수 혐의가 인정돼 구속된 바 있고 1심(김연학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1부 부장판사) 결과 주거침입 만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형평성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 형법상 주거침입죄의 형량은 벌금 500만원 이상 징역 3년 이하다. 현대 사회에서 현금 결제를 하는 경우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그런만큼 집에 현금을 쌓아놓는 일은 거의 없다. 즉 절도 및 강도 목적의 주거침입 범죄율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귀중품을 노리고 집에 침입했다고 해도 특수 절도 및 강도죄 등으로 더 엄하게 처벌되기 때문에 주거침입 행위는 흡수된다. 일반적으로 주거침입죄로 고소하는 일은 두 사람이 상호 집까지 드나들 정도로 친밀한 관계인 상태에서 사이가 틀어져 상대를 곤란하게 하려는 경우가 많다.

주거침입범의 주 목적은 성범죄일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이고 갈수록 그런 사례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법의 사각지대는 너무 크다.

신림동 사건의 적나라한 영상이 전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줬지만 법조계에서는 법률상 옷을 벗기려고 하거나 폭행을 하지 않고 문을 열려고 안간힘을 쓴 것만으로는 강간미수가 적용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었다.

지난 5월31일 임지영 변호사(대한변협 수석 대변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문을 강제로 열려고 하거나 출입을 시도하는 것만으로는 강간죄 실행의 착수라고 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래서 가칭 ‘강간 목적 주거침입죄’ 등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조애진 변호사(법률사무소 시대)는 5일 저녁 기자와의 통화에서 “(현행법으로는 강간) 실행의 착수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사실 주거침입도 건물 안에 문을 열고 들어오면 성립될 수 있지만 이게 강간미수는 법 개정이 안 되고서는 적용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냥 스토킹하다가 따라온 것에 불과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강간 목적 주거침입죄를 입법하는 것에 대해 “변호사의 생각에서는 가장 좋은 것은 구성요건이 구체화되는 것이다. 구성요건이 열려 있으면 그게 사실 판검사에게 권력을 더 부여해주는 것밖에 안 된다”며 “입법자들이 국회에서 그런 법률을 만들면 요즘 불안한 여성들의 입장에서 더 좋은 게 틀림없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어 “근데 판단하기가 좀 어려울 것 같다. 사실 다 고의범이다. 과실범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성범죄의) 고의성 판단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라며 “입법 기술적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전문가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핵심은 ‘구성요건’과 ‘형량’을 어떻게 성안하느냐다.

조 변호사는 “예컨대 옷을 벗고 들어왔을 경우 고의를 추정할 것인지 마치 사기죄에서 어떠 행위의 양태를 보고 미필적 고의를 추정하는 것처럼 (강간 목적 주거침입죄도) 다른 입체적인 정황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강간 고의를 추정하는 것들에 관해서는 입법 기술적으로 어떻게 적용할지의 문제가 남아있다”고 짚었다.

형량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 현재 강제추행죄(형법 298조 벌금 1500만원 이하에서 징역 10년 이하)도 그렇게 형량이 센 것이 아니”라며 물리적인 접촉을 요하는 성추행 범죄를 기준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원룸 건물의 입구 현관문을 무단 침입한 경우가 아니라도 여성의 귀갓길을 불안하게 하는 일들은 많다.

이를테면 남성이 성범죄를 목적으로 지하철역에서 걸어 나오는 여성의 뒤를 쫓아 200M 이상 따라가서 거의 코앞까지 다가갔다가 돌발 상황으로 인해 그냥 달아난 경우, 귀가하는 여성에게 몰래 다가가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는 경우, 여성 혼자 사는 집의 창문으로 노골적으로 들여다 보거나 자위행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 등이다.

그래서 △강간 목적 주거침임죄와 더불어 △스토킹법 보완 △공연음란죄 형량 강화 등이 병행돼야 한다.

스토킹법은 신림동 사건 이후 가장 많이 거론된 대응책이었고 이미 국회에 5건이나 발의돼 있다. 기존의 스토킹 행위는 경범죄처벌법(3조 1항 41호 1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의 한 파트로만 취급됐고 처벌 조항 자체가 매우 경하다. 그래서 스토킹법은 처벌 수위를 높이고 스토킹 피해자에 대한 보호를 골자로 하고 있다. 다만 오랫동안 계류 중인데다 그 내용마저도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형식에 국한돼 있어 한계가 있다. 그래서 처음 보는 모르는 여성의 뒤를 밟는 스토킹 행위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구성요건을 적시해서 벌금형으로라도 처벌을 규정해야 한다.

일시적 스토킹 행위를 처벌하게 되면 집 방향이 같은 남성에 대한 오인 처벌이 우려될 수 있지만 조 변호사는 “그거는 그냥 (CCTV 등 남성의 행적을) 조사해보면 다 나올 것이고 여성 입장에서 쫓아오는 것과 그냥 가는 것의 차이를 모를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① 사건에서 피해 여성은 C씨가 뒤를 밟고 있다는 낌새를 알아챘고 현관문 앞에서 머뭇거리는 등 시간차를 두고 황급히 현관 입구로 향했다. C씨는 동시에 멈췄다가 재빨리 여성의 앞에 섰고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려는 여성의 뒤에 바짝 붙어 이내 따라 들어왔다. 남자친구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난 여성은 펑펑 울었고 머릿 속이 백지가 돼 순간적으로 C씨의 얼굴을 보는 것도 무서워 어떻게든 집으로 피신하려고만 애썼다.

아무리 봐도 여성이 같은 집 방향인 남성과 쫓아오는 남성을 헷갈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공연음란죄(형법 245조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 또는 1년 이하의 징역)도 유형을 다양화하고 처벌 수위를 높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여성의 안심 귀갓길을 위해 이러한 입법 개선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조 변호사는 궁극적으로 “사회적 분위기를 조망하면서 최근의 위험 상황이 부각되는 현실에서는 여성에 대한 보호 법제가 더 강화돼야 한다는 식으로 하면 나는 거기에 동의할 분들이 되게 많을 것이라고 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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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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